간단한 명량 후기 그냥영화감상

알림 : 이 후기에는 스포일러성 요소가 어느정도 함유되어 있습니다. 백지상태에서 영화를 보고 싶으신 분은 클릭하지 않으시는 편을 추천드립니다.

                                    <개인적으로 명량 포스터들 중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포스터입니다.>

김한민 감독은 활 쏘는 동네 선비를 가지고 최종병기 활이라는 영화를 만들었습니다. 그런 영화를 만든 감독이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영웅으로 꼽히는 충무공과, 충무공의 인생 커리어에서 가장 극적인 순간이었던 명량해전을 영화로 만들었습니다. 심지어 이순신 역을 맡은 배우는 연쇄살인마, 혹은 비리공무원최민식입니다. 재미가 없을거라고 생각하기도 힘든 조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개봉하기 전부터, 이것은 꼭 봐야겠다고 생각을 해두었고 신나는 금요일을 맞이하여 보게 되었습니다.

영화는 대단했습니다. 사실 저는 범죄와의 전쟁(이건 당시 군에 있었기에...)이나 악마를 보았다 같은 영화를 보지 않았기 때문에 최민식하면 떠오르는 인상은 북한군 특수부대 요원이나 아햏햏(...) 정도였습니다만 이번 영화에서 명배우의 이름에 걸맞는 멋진 연기를 보여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를 관람한 분들의 후기에서 공통적으로 지적되는 것이 충무공이 너무 평면적으로 묘사되었다는 점인데 저는 그 부분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패배주의와 두려움이 만연한 부하들을 이끌고, 전력이라고 보기도 미비한 한 줌의 함대로 거대한 규모의 일본 함대와 싸워야 하는데 그 싸움에서 지면 조선이 멸망한다는 막장 중에서도 상막장스러운 상황에서 지휘관이 표출할 수 있는 고뇌는 한정적입니다.

작중에서 나온 대사를 인용하자면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어야 하는 충무공 입장에서는 결코 남의 앞에서 두려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랬다가는 정말 끝이기 때문이죠. 그러므로 이순신은 병사와 수하들 앞에서 비인간적이고 외골수적인 모습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건 당연한겁니다. 괜히 E순신이겠습니까. 

그런 상황에서 이순신이 어머니의 위패 앞에 앉아 나지막하게 읊조리는 '어머니' 한 마디는 그의 모든 고뇌와 내적갈등을 함축하여 표현한 멋진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감독도 스스로 괜찮았다고 생각했는지 2번이나 우려먹었는데 솔직히 한 번만 하고 끝내는게 훨씬 전달력이 좋았을겁니다. 중요해서 두 번 강조하면 별로 안중요해지더군요.

그 장면 말고도 배설이 도망가기 전에 이순신이 꿈을 꾸는 부분이 있는데 거기서는 겉으로 표출되지 않아서 나레이션이나 혼잣말이 거의 없는 이 영화 안에서 좀처럼 나오기 힘들었던 이순신의 내면을 환상의 형태로 보여줍니다. 그 장면에서 이순신 역을 맡은 최민식은 정말 소름끼치게 멋진 연기를 보여줍니다. 대단히 감동적인 부분입니다.(솔직히 취화선과 아햏햏의 영향으로 약간 웃기게 보이기도 했습니다만...) 옆자리에 있던 남학생분은 눈물을 흘리시는 것 같았는데 그 정도로 감동적이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이 영화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있는 또 다른 배우 중 한 명이 구루지마 미치후사 역으로 나온 류승룡입니다. 솔직히 최종병기 활 때의 모습이 자꾸 떠올랐습니다. 딱 그 정도의 카리스마를 보여주는데 적당합니다. 악당이 너무 멋있으면 재미가 없죠.
그런데 마지막에 목이 잘리는 장면은.... 음...... 참..... 그랬습니다. 목이 장대에 대롱대롱 걸려있는 장면은 참 뭔가 안쓰러웠습니다. 아마 배우 분도 많이 슬퍼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나머지 배우들은 그냥 그저 그랬습니다. 벙어리 아가씨 역을 맡은(아마 작중에 나오는 유일한 여자이지 싶은) 배우분은 이름은 잘 모르겠는데 진짜 벙어리인줄 알았습니다. 그 분 빼고 나머지 조연배우분들은 솔직히 기억에 남지는 않습니다.

명량해전을 다룬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당연히 명량해전입니다. 조금 길기는 합니다. 그래도 포격전, 충각, 백병전, 저격 등 해전을 다룬 영화에서 보여줄 수 있는 장면은 전부 보여줍니다. 연출도 잘 되었고 CG처리도 잘 되었는지(아니면 진짜 실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조잡한 합성 티도 나지 않습니다. 상당히 긴 시간을 할애한 해전 파트는 농밀하게 잘 구성되어 있고 상당히 긴 시간이 할애되었음에도 보면서 지루하다고 전혀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캐리비안의 해적스러운 백병전이 나온다거나 실제 명량해전에서 나온 것보다 조선군이 훨씬 많이 죽는다거나 하는 각종 고증 문제들이 제기되고는 합니다만 사실 대부분의 관객들과 마찬가지로 저 역시 어지간히 문제가 될 수준이 아니면 고증은 아무래도 상관 없습니다. 

특히 백병전 이야기는 많이들 지적이 나오는 것 같은데 막상 백병전이 안나오면 그것도 참 이상할 것 같습니다. 실제로는 백병전이라기보다는 공성전이었다고 하지만 이순신과 조선 수군이 일방적으로 일본군을 죽이기 시작해서 그냥 많이 죽이는걸로 1시간이나 되는 해전 장면을 버티기는 만드는 입장에서나 보는 입장에서나 조금 힘겨울겁니다. 그걸 안힘들게 하는게 감독의 역량입니다만 현실적으로 그렇게 노력하기보다는 그냥 백병전을 넣는게 훨씬 합리적입죠. 보는 재미도 있었습니다. 나쁜 선택은 아니라고 봅니다.

포격전은 불멸의 이순신과 비교하기 힘듭니다. 포탄도 다양하게 묘사되고 연출도 잘 되어있습니다. 특히 대장군전 쏘는 장면이 많이 멋있었습니다. 덤으로 충각과 뿔은 남자의 로망입니다.

전체적으로 말씀 드리면 잘 만든 영화입니다. 역량이 있는 감독이 훌륭한 소재를 가지고 멋있는 배우와 함께 많은 돈을 들여서 영화를 찍었는데 그 영화가 훌륭하지 않기는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만 그런만큼 그 영화를 보러 가는 관객들의 기대치도 상향조정되기 마련인데 이 영화는 그 기대치를 분명히 상회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일견을 권하는 바입니다.

PS 1. 권율 역을 맡은 배우가 권율이 아니라서 많이 안타까웠습니다.

PS 2. 이건 치명적인 스포일러인데 사실 이 영화에서 조선군이 이깁니다. 

덧글

  • 炎帝 2014/08/02 06:15 # 답글

    벙어리 여자 역을 맡은 분이 다름아닌 이정현이라 합니다.
    예, 예전에 가수도 했던 그분이요.;;;

    백병전이나 사망자가 너무 많이 나온 것도 어쩔 수 없는게, 실제 사상자를 그대로 재현하면 긴장감 전혀 없는 판타지로 여겨지게 되거든요.;;
    실제 사상자 수를 얘기했더니 '판옥선 11척이 아니라 이지스 11척이었냐'고 따지는 댓글이 달렸다는 얘기도 있으니까요.

    그래도 비교적 최근에 주장된 '오히려 물살은 초반에 조선군에게 더 불리했다.' '12대 300도 아니었다. 초반엔 1대300이었다. 충무공의 배를 뺀 11척은 응원단 역할도 못했다' 라는 설을 적극 수용한 것도 인상적이었습니다.
  • rumic71 2014/08/02 16:25 # 답글

    실제 역사에서는 포격맞고 죽어서 둥둥 뜬 시체를 주워다 토막쳐 매달았으니 오히려 굉장히 멋지게 연출해 준 셈입니다.
  • 분필한다스 2014/08/03 00:24 #

    뭐 실제 역사야 그렇다는걸 알고 있지만 아무래도 류승룡 배우 인생에서 아마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목이 잘려서 대롱대롱 매달리는게 아닐까 싶어서 말이죠 ㅎㅎ
  • rumic71 2014/08/03 19:27 #

    뭐 그건 영화 구조상 일종의 보복이죠. 쿠루시마가 포로들 학살해서 배로 띄워 보냈으니...
  • 지녀 2014/08/02 22:48 # 답글

    윗분 말 맞다나 구루지마는 솔직히 상선(이순신함)이 명량 무쌍 찍으면서 누군지도 모르고 빵야빵야 하는 도중에

    뭐가 흘러내려와서 보니 왜군 장수여서

    건져서 토막내서 효수한 것이 정사이죠.

    ..실제로는 카리스마를 보여주기도 전에 1대에게 끔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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